한국은 먹는 음식(절식)이 계절마다 왜 따로 있었을까?
오늘날에도 설·정월대보름·삼복·추석·동지처럼 계절과 절기에 맞춘 음식 이야기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도 예전엔 “원래 그렇게 먹는 거지” 정도로만 넘겼는데, 아이가 “왜 꼭 그날엔 그 음식을 먹어?”라는 질문을 하자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한국의 절식은 단순한 전통놀이가 아니라, 제철 재료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고, 보관과 위생이 어려웠던 시대에 몸을 관리하며, 공동체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생활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질문에서 시작된 제 호기심을 절식이 생겨난 배경을 ‘절기 달력’, ‘보관 기술’, ‘건강과 공동체’ 관점으로 정리하고 제가 아이 식습관에 접목해 효과를 봤던 방법도 함께 공유해보겠습니다.
절식은 ‘절기 달력’의 제철 식생활
아이와 장을 보러 갔던 날이었습니다. 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아이가 마트에서 “왜 요즘은 딸기보다 딸기맛 과자가 더 많은거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신기하게도 절식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사계절 내내 같은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없었고, 그 시기에 나는 것들을 가장 맛있고 안전하게 먹는 방법이 곧 생활의 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 와서 절기 음식을 이야기해 줬습니다. “옛날엔 달력에 적힌 날들이 그냥 기념일이 아니라, ‘지금 뭘 먹어야 몸이 편한지’ 알려주는 표시였어.” 아이는 처음엔 시큰둥했지만, 제가 절기마다 대표 음식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자 금방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한국 절식은 24절기와 명절을 중심으로 한 ‘계절 달력’에서 나왔습니다. 절기는 농사와 직결된 시간표였고, 농사 일정이 곧 식재료의 흐름이었습니다. 봄엔 겨울 저장 식품이 떨어지고 새나물이 올라오니 나물 중심 식사가 늘었고, 여름엔 더위와 습기로 음식이 상하기 쉬워 열을 내려주거나 땀을 고려한 식사가 강조됐습니다. 가을엔 곡식과 과일이 풍성해져 떡·과일·곡물 음식이 발달했고, 겨울엔 저장성이 좋은 곡물·콩·발효식품 중심으로 식탁이 구성되었습니다. 절식은 이런 흐름을 “기억하기 쉬운 음식”으로 고정해 둔 장치이기도 합니다. 정월 대보름의 오곡밥은 다양한 곡물을 섞어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이면서, 겨울 끝자락에 곡물의 영양을 보충하는 현실적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삼복의 보양식(예: 삼계탕)은 더위에 지치기 쉬운 시기에 ‘기운을 보충한다’는 인식과 결합해 자리 잡았고, 현재도 삼복의 대표음식 중 하나 입니다. 동지의 팥죽은 붉은색 팥이 액운을 막는 상징과 함께 겨울철 따뜻한 한 그릇으로 생활에 자연스럽게 들어왔습니다. 추석의 송편 역시 햇곡식으로 만든 떡이라는 상징과, 수확기의 풍요를 나누는 공동체 행위가 합쳐진 대표 절식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아이에게 설명하면서 방식 하나를 바꿨습니다. “그날엔 꼭 이걸 먹어야 해”가 아니라, “그 계절엔 이런 재료가 맛있고, 이런 방식이 몸에 잘 맞고 편안하게 해준단다”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 아이가 절식을 ‘의무’가 아니라 ‘이유 있는 선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절식은 결국 계절의 리듬에 맞춘 제철 식생활을, 공동체가 쉽게 공유하도록 만든 한국식 달력 음식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저장·보관이 어려웠던 시대, 안전한 먹는 법
아이와 함께 음식을 만들 때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이거 언제까지 먹어요?”입니다. 저희 아이는 학교에서 배워 온 유통기한 확인법을 알고 싶어서 자주 이런 질문을 합니다. 냉장고가 당연한 시대에도 우리는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보관법을 따지는데, 냉장고가 없던 시절은 어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아이에게 동지 팥죽 이야기를 하다가 “그럼 옛날엔 겨울에 과일도 못 먹었어?”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질문 덕분에 절식이 단지 ‘기념 음식’이 아니라, 상하기 쉬운 환경에서 안전하게 먹는 규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절식이 발달한 두 번째 이유는 보관과 위생의 제약입니다. 예전에는 냉장·냉동이 없고, 여름엔 특히 식중독 위험이 커서 ‘상하지 않는 조리법’과 ‘빨리 먹어 치우는 구조’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절식에는 발효, 건조, 염장, 끓이기 같은 방식이 자연스럽게 포함됩니다. 김치와 장류 같은 발효 기반 음식은 사계절을 버티게 해주는 중요 식품이었고, 절식은 이런 발효·저장 기술과 결합해 “그 시기에 가장 안정적으로 확보 가능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자리 잡았던 것입니다. 봄철에는 겨울 저장 음식이 줄고 신선 채소가 올라오면서 나물 중심 절식이 발달합니다. 나물은 데치거나 무쳐서 비교적 빠르게 조리할 수 있고, 산나물·봄나물처럼 그 시기에 풍부한 재료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여름은 습도와 온도가 높아 음식이 상하기 쉬우니, 뜨겁게 끓여 바로 먹는 국물 요리나 향신·양념을 활용한 조리법이 상대적으로 안전했을 수 있습니다. 또 땀을 많이 흘려 입맛이 떨어질 때는 새콤한 맛, 시원한 국(냉국)처럼 식사를 돕는 형태가 발달하기도 했습니다. 가을은 수확기라 곡물과 과일이 풍부해 떡·한과·과일 절식이 자연스럽게 늘고, 겨울은 신선 재료가 제한되니 곡물·콩·건어물·발효식품 중심의 식생활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우리나라 전통인 절식은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그 시기에 가장 합리적인 재료를 안전하게 먹는 방식”을 문화로 굳힌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아이 식습관에도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여름에는 한 번에 많이 만들어 오래 두는 반찬을 줄이고, 그날 그날 빨리 먹을 수 있는 국이나 간단한 무침 위주로 바꾸니 식사 스트레스가 줄었습니다. 반대로 겨울에는 찌개나 국을 중심으로 두고, 김치·장류를 활용해 맛의 골격을 잡으니 준비 시간이 줄고 아이도 안정적으로 먹게 되었습니다. 절식은 ‘전통’이라는 말로 끝내기보다, 보관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한국식 식생활의 안전장치로 이해하면 좋을거 같습니다.
건강과 공동체를 챙기는 루틴
제가 절식의 힘을 가장 크게 느낀 순간은 ‘함께 먹는 분위기’가 달라질 때였습니다. 아이가 밥을 대충 먹고 간식을 찾는 날이 많아 고민이었는데, 정월대보름 즈음 오곡밥 이야기를 해주며 “오늘은 특별히 우리도 곡물을 섞어 먹어볼까?” 하고 작은 이벤트를 만들었더니 아이가 신기해하며 밥을 더 천천히 먹었습니다. 음식 자체가 엄청 맛있어서라기보다, ‘의미가 붙으니 집중이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절식을 거창하게 재현하기보다, 계절마다 한 가지씩만이라도 ‘이유 있는 음식’을 식탁에 올리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아이에게도 효과가 있었고, 가족 대화도 늘었습니다. 절식은 건강 관리와 공동체 결속을 동시에 수행하는 루틴이었습니다. 먼저 건강 측면에서 절식은 계절 변화에 따른 몸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음식, 저장 가능한 곡물·콩류 중심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봄에는 나물로 식탁을 가볍게 전환하며, 여름에는 기력 보충이나 수분·입맛 조절을 돕는 형태가 등장하고, 가을에는 수확물로 영양을 채우는 식입니다. 물론 현대 의학 기준으로 모든 절식이 ‘과학적으로 딱 맞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계절에 따라 식재료와 조리법을 바꾸는 관행 자체가 생활 건강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공동체 측면에서는 절식이 ‘같은 날,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문화로도 정착합니다. 가족, 이웃, 마을이 같은 절기에 같은 음식을 나누면 자연스럽게 만남과 대화가 생기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일정 공유와 관계 유지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구조입니다. 특히 전통 사회에서는 정보를 얻는 채널이 제한적이었기에, 절기마다 모여 먹고 나누는 자리가 소식과 도움을 교환하는 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아이에게 설명할 때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정리해 줍니다. “절식은 음식이면서 동시에 약속이야. 같은 계절을 같이 지나가고 있다는 표시란다.” 그렇게 말해주니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는거 같았지만 절식을 ‘옛날 이야기’로만 보지 않고, 가족 루틴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실제로 동지에 팥죽을 끓일 때도, 팥을 꼭 많이 넣느냐보다 “겨울엔 따뜻한 한 그릇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면 좋을거 같습니다. 한국의 절식은 계절 변화에 맞춰 몸을 관리하는 지혜와, 공동체가 시간을 함께 맞추는 관계 문화가 결합해 만들어진 ‘사회적 식사 루틴’이었습니다. 그래서 절식은 오늘날에도 ‘의미를 알고 적당히 적용’하면 가족 식탁을 안정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 절식이 따로 있었던 이유는 절기가 제철 식생활의 기준이었고, 저장·보관 환경에서 안전한 먹는 법이 필요했던 옛 조상님들의 지혜였습니다. 건강과 공동체를 동시에 챙기는 루틴이기도 합니다. 절식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계절에 맞춘 한 가지’부터 시작하면 집밥에 대한 부담도 줄어 들고 제철 식재료로 건강한 한끼를 챙겼다는 보람도 느끼실 수 있을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