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집집마다 맛이 다른이유, 왜 ‘정답’이 없을까?
한국은 본격적으로 추운 겨울철이 되기 전인 11월에 보통 김장을 합니다. 저희 친정은 조금 더 따뜻한 남쪽이라 매년 12월 초에 김장을 하는데요, 김장은 오래전부터 이웃들과 힘든 노동을 나누며 다함께 참여하는 문화입니다. 저희 친정집 김장에도 요리 노하우가 많은 고수인 어머니들이 많이 모여서 함께 김장을 담그며 서로의 김장 방식이 다른점들을 이야기 하는걸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듣던 저희 아이도 "그럼 어디 김치가 진짜 김치예요?”라고 물었습니다. 모든집에 있는 김치가 다 진짜인데, 귀여운 질문에 웃음이 났습니다. 이번에 김장을 참여하면서 함께 담그고 먹어보니 김치 맛은 공식이 아니라 환경과 취향이 쌓인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 레시피 차이, 발효 조건, 손맛과 가족 입맛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김치에 정답이 없는 이유’를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레시피가 달라도 되는 이유
이번 친정집에서 나름 김치 담그는 노하우를 전수 받았던 저는, 작게나마 처음 김치를 직접 담가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먼저 한일은 인터넷에서 김치 담그기 “황금 비율”이라는 레시피를 여러 개 저장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장을 보러 가보니 첫 단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배추가 어떤 날은 속이 단단하고 어떤 날은 수분이 많았고, 무도 달고 매운 정도가 제각각이었습니다. 저는 레시피대로 했는데도 맛이 기대와 다르게 나와서 속상했고, 아이는 한 입 먹고 “조금 더 달면 좋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김치는 ‘재료 자체’가 이미 변수라서, 레시피를 완벽하게 따라도 결과가 똑같을 수 없다는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김치 맛이 집집마다 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레시피의 구성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김치는 배추(또는 무, 열무, 갓 등)라는 주재료에 소금 절임, 양념(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단맛 요소(배, 사과, 설탕/매실청), 감칠맛 요소(젓갈, 새우젓, 멸치액젓, 까나리액젓), 풀(찹쌀풀/밀가루풀), 그리고 추가 재료(갓, 미나리, 쪽파, 무채)의 조합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중 하나만 바뀌어도 맛의 방향이 달라지는 음식입니다. 특히 ‘염도’는 정답이 나올 수 없는 대표 요소입니다. 절임이 조금만 덜 되면 싱겁고 금방 물러지기 쉽고, 조금만 더 되면 짠맛이 강해져 밥과 먹을 때도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 절임은 배추의 크기, 잎 두께, 수분, 그날의 온도, 소금 종류(굵은소금/천일염 등), 절이는 시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결국 레시피는 “대략적인 범위”를 주는 안내서일 뿐, 최종 맛을 결정하는 것은 그 집의 재료 컨디션에 맞춰 조절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걸 아이 밥상에 적용하면서 방법을 바꿨습니다. 처음부터 한 번에 큰 통을 담그지 않고, 같은 양념으로도 배추 일부는 젓갈을 줄이고, 일부는 과일을 조금 더 넣어 ‘두 가지 버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좋아하는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집의 “정답 김치”는 인터넷의 황금 비율이 아니라, 가족이 실제로 잘 먹는 비율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그때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발효가 맛을 만든다
김치를 담그고 나서 제가 가장 당황했던 순간은 “어제랑 오늘 맛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이가 전날에는 잘 먹더니 다음날은 “시어졌어”라고 하고, 저는 같은 김치를 꺼냈는데도 맛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김치는 발효식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부터 김치를 ‘완성 음식’이 아니라 ‘발효가 진행 중인 음식’으로 정확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사실 김치는 담그는 순간 끝나는 게 아니라, 그다음부터 시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김치에 정답이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발효라는 과정이 매 순간 맛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김치의 발효는 젖산균 활동과 관련이 있고, 이 활동은 온도와 시간에 크게 좌우됩니다. 같은 레시피로 담가도 실온에 두는 시간, 냉장고 온도, 김치냉장고 유무, 보관 용기의 밀폐 정도에 따라 익는 속도와 산미가 달라집니다. 즉, 김치 맛은 “담글 때의 조합”과 “익힐 때의 환경”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덜 익은 김치는 신선한 채소 향과 양념의 직선적인 맛이 두드러지고, 잘 익은 김치는 산미와 감칠맛이 올라오면서 깊이가 생깁니다. 그런데 어떤 집은 겉절이처럼 아삭한 김치를 선호하고, 어떤 집은 돼지고기와 끓일 수 있는 새콤한 김치를 좋아합니다. 선호가 다르면 발효 목표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보관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태가 정답이냐”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아이가 매운맛과 신맛에 민감한 시기가 있었을 때, 발효 관리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식사 반응이 달라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담근 뒤 실온에 오래 두지 않고, 비교적 빨리 냉장 보관으로 옮겼더니 신맛이 급하게 올라오는 걸 줄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찌개용 김치는 일부러 더 익혀두면 국물 맛이 훨씬 안정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목적(생김치로 먹을지, 찌개로 활용할지)에 따라 발효 상태를 나누면 “김치가 계속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김치가 다양한 역할을 해주는 장점”으로 바뀝니다. 정리하면 김치는 한 가지 맛으로 고정되는 음식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맛의 스펙트럼이 이동하는 음식입니다. 발효가 진행되는 한, ‘정답’은 한 점이 아니라 여러 지점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젓갈·가족 입맛이 만든 우리 집 기준
아이에게 “어디 김치가 진짜 김치예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처음엔 “원래 집마다 달라”라고만 답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집 김치는 왜 이런 맛이에요?”라고 다시 물엇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려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김치 맛은 단순히 요리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환경과 가족의 취향이 누적된 결과라는 걸 더 분명히 보게 됐습니다. ‘손맛’이라는 말은 감각의 우연이 아니라, 반복된 선택의 결과입니다. 어느 집은 젓갈 향이 강한 김치를 좋아하고, 어느 집은 젓갈을 거의 쓰지 않고 깔끔한 맛을 선호합니다. 어느 집은 매운 고춧가루를 쓰고, 어느 집은 색은 진하지만 맵지 않은 고춧가루를 고릅니다. 단맛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일을 넣는 집, 매실청을 넣는 집, 설탕을 아주 소량만 쓰는 집, 아예 단맛을 배제하는 집이 있습니다. 이런 선택이 쌓이면 그 집만의 “기준 맛”이 만들어집니다. 지역적인 요소도 큽니다. 전통적으로 해안가 지역은 젓갈 사용이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웠고, 내륙에서는 젓갈을 줄이거나 대체하는 방식이 발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유통 환경에서는 지역 차이가 예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가정의 선호는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김치 맛은 “누가 먹느냐”에 따라 다시 조정됩니다. 아이가 있는 집은 매운맛과 젓갈 향을 낮추는 방향으로, 어른 입맛 중심 집은 감칠맛과 숙성 맛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기 쉽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김치를 자연스럽게 먹이는 과정에서 ‘정답 찾기’보다 ‘기준 만들기’가 더 효과적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김치를 담글 때마다 크게 바꾸지 않고, 한 번에 한 요소만 조절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는 고춧가루를 조금 줄이고, 다음에는 젓갈을 반 스푼 줄이고, 또 다음에는 배를 조금 더 넣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잘 먹는 날의 조건을 메모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니 “우리 집 김치는 너무 맵지 않고, 젓갈 향이 세지 않으면서, 아삭함이 오래 가는 방향”이라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그 기준이 생기자 김치가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김치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가 아니라, 각 가정이 자신의 환경과 입맛에 맞는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인거 같습니다. 손맛은 감각의 신비가 아니라, 가족을 관찰하고 기록한 결과로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김치에 정답이 없는 이유는 레시피가 재료·염도 변수에 흔들리고, 발효가 시간과 환경에 따라 맛을 계속 바꾸며, 손맛이 지역·젓갈·가족 입맛이라는 생활 조건에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황금 비율’을 찾기보다 우리 집 기준을 하나씩 세워가면, 김치는 더 이상 어려운 숙제가 아니라 가장 든든하고 훌륭한 집밥요소가 될 것입니다.